나경원 가족관계 나이 리즈 젊은 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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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국회의원의 나이를 보면서 새삼 놀랐다. 그녀는 1963년생으로서 내년이면 환갑이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얼굴이 많이 변했다고 성형전후 라고 조롱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되면 리즈 젊은 시절과 얼굴사진이 많이 달라진다.

 

" 정치하면 얼굴 변천사가 심하다 "

 

스트레스와 정치는 만병의 근원인 것 같다.

 

나경원 어린시절 사진

 

어린 시절

 

 

 

한 아이가 고향 서울에서 탄생했다. 그녀는 장차 뭐가 될지 모르겠다.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당시 엘리트 공군 조종사 직업으로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당시에 금수저 집안만 먹을 수 있던 바나나도 먹었다. 아마 어릴적의 나경원은 동네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 느그 집에는 바나나 없지? "

 

원래 아이들은 자랑하면서 크는 법이다.

 

 

학창 시절

 

어려서부터 똘똘하고 공부를 잘했던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나 학력 서울여고와 서울대학교를 거쳤다. 태생부터 서울 스타일 정도 된다. 그래서 지역구도 동작구이며 서울시장을 노리는 것인가.

 

아무튼, 당시 서울대 얼짱 반열에 올랐다. 대학 동기인 조국이 남자 대표를, 나경원이 여자 대표를 역임했다. 반면 남자 대표는 데모하러 다녔고, 여자 대표는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다.

 

 

대학 시절 결혼 스토리

 

 

 

캠퍼스 CC로 만난 남편 김재호 판사의 집안은 평범했다. 외모도 동네 책방의 알바생 같았지만, 당시의 소문에 의하면 서울대 3대 킹카에 들어갔다고 했다. 역시 사진과 실물은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녀가 이 사람을 택한 이유는 자상하고 따뜻해서라고 했다. 옛날 사진이지만 초호화 요트 데이트도 좋아 보인다.

 

 

판사 변호사 시절 정치 입문

 

1992년 한국 나이로 30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후 판사 생활을 대략 10년 조금 안되게 했다. 정치 입문 계기는 딸 김유나 때문이라고 했다. 다운증후군이 있어서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 활동

 

이때부터 였다. 엄친아로 자란 그녀가 혹독한 정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고난이 시작되었다. 짬밥이 늘어난 만큼 스트레스와 공격은 더욱 거세져만 갔다. 과거의 영광은 추억이 되었다.

 

 

그래도 현빈과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아마 이때가 정치 인생 중에 가장 행복한 리즈 시절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해병대 마라톤 대회는 왜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 사진 중에는 연예인과 찍은 사진이 많긴 하다. 너무 즐거워 보인다. 사심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어느 대학생 단체가 나경원 사무실에 쳐들어갔다가 쫓겨났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 나경원은 일본편을 들고 있으며 전쟁을 유발하고 있다. "

 

이렇게 외치며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사무실을 점거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에 연행되었다. 바닥에 끌려가며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른다. " 대한민국 만세 "

 

 

가족 관계

 

자녀는 아들 김현조, 딸 김유나가 있다. 아버지는 홍신학원이라는 사학재단의 이사장이다. 그녀에게는 여동생만 3명인데 홍신유치원을 비롯하여 음악 관련 직업, 또는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아버지 나채성 사위, 즉 본인의 제부, 여동생의 남편은 교수이거나 어느 기업의 대표 이사이다.

 

 

정치는 진영 싸움이기 때문에 공격하면 방어도 해야 한다. 반대 세력에서 무수한 공격을 받고 있는 여전사 나다르크 정도 된다. 그 이유는 뭘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태극전사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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