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 나이 고향 아내 지경자 수지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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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은 누군가에게는 의리의 사나이로 알려져 있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불신시대는 화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 그의 이력이 더욱 화제가 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 그래야 오래도록 장수하며 먹고살 수 있다. 장세동의 의리는 포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풀어보겠다.

 

장세동 젊은시절

 

먼저 장세동은 누구인가.

 

고향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1936년생으로 2020년 기준 올해 한국 나이 85살이 된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장세동은 학력 공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기수 16기로 졸업을 했고 전두환의 후배이다.

 

 

 

대학시절에도 각종 성적이 우수하여 나름 명성이 있었다. 이를 알아본 전두환의 눈에 들어서 하나회에 가입을 했다. 주로 대구 경북 부산 출신들만 가입을 시켰는데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서울 물바다 공포조장

 

군사 반란, 즉 12 12 사태에 전두환을 최측근으로 모셨다. 일종의 브레인으로서 기획 전략 수행까지 했다. 쿠데타가 성공한 후 그의 부하들은 승승장구 했다.

 

장세동은 핵심 자리인 안기부장까지 지냈다. 일단은 평화의 댐 사건이 기억이 남는다. 북한이 댐을 방류하면 남한은 물바다가 된다고 공포감을 조성하여 모금하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갔다.

 

 

그에게는 부인 지경자 여사가 있다. 군인 시절부터 내조의 여왕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남녀 성평등 시대에 별로 좋아하는 명성이지만, 어쨌든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 여사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김치 담그는 법, 사람과의 관계 유지, 군인의 아내로서 살아가는 법 기타 등등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뉴스에서 접하지만 과거의 군인들 배우자 사이에서도 계급은 존재했다. 남편의 상관이 곧 자신의 상관이 되기도 했다.

 

장세동 서초동 고급 아파트

 

장세동에게도 자손인 자녀 아들 둘이 있다. 구글 검색 결과 장재훈, 장재혁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자세한 정보는 찾기가 어렵다. 다만, 그의 현재 집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라고 했다. 최소 15억이 넘는다고 한다.

 

넓은 거실에 확 트인 관악산 뷰와 한강 뷰까지 있는 럭셔리한 주택이다. 그가 그 많은 재산은 어떻게 모았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다만, 알 수 있는 교훈은 출세하면 강남의 아파트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아들과 딸 후손들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한 여인이 있었다. 멀끔해 보인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는 폭행을 했다. 심지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때는 1987년이었다.

 

간첩은 죽여도 면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그녀를 간첩으로 몰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나라가 시끄러웠을 당시, 안기부에게는 좋은 재료가 되었다.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녀의 본명 김옥분에서 수지킴이 되었다.

 

 

언론을 시켜 각종 기사들을 유포하기 시작했고 국민들의 관심은 수지김에게 향했다. 남편 윤태식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이 사건은 훗날 안기부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정치 공작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가족들은 연좌제로 몰려 불행한 인생을 보냈다.

 

 

 

윤태식은 비호 아래 각종 사업을 하며 잘 살았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도 있었다. IT업계의 잘 나가는 사업가가 되기도 했다. 훗날 진실이 밝혀져서 징역을 살았지는 현재 근황은 출소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까지 밝혀진 수지 김 사건 전말의 줄거리 요약이다. 정권의 유지를 위해 사망자를 간첩으로 몰았던 희대의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세동은 이렇게 말했다.

 

"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일은 밑에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

 

 

장세동은 그 후 무탈하게 지냈으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를 했다. 이때 전두환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 알고 있던 충정의 사나이 이미지와 다르다. 전두환은 말했다.

 

" 나이를 먹으니 말을 듣지 않는다. "

 

출마 할때는 의리가 없다가 조사 받을 때는 의리가 상한가를 쳤다.

 

그는 청문회나 검찰 조사에서는 입을 닫았다. 장세동이 입을 열면 본인 스스로 다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권력의 움직임에 따라 처세하는 것, 그가 현재도 강남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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