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프로필 재산 부인 (아내) 딸 로얄 집안
- 정치&사회&연예
- 2020. 12. 3. 18:43
김종인 전 국회의원의 생애와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이미 나는 녹초가 되었다. 김종인의 집안과 가계도를 도표로 그려볼까도 했는데 지쳤기 때문에 때려쳐야겠다.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로얄 패밀리 정도 된다. 미국의 월가 정도 된다고 할까. 다른 유명한 집안 보다도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곳이 여기 숨어 있었다.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이 맞다면 할아버지인 가인 김병로 선생님을 존경한다. 독립운동에 힘썼으며,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17살에 최익현의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고 후에 법학을 공부하셨다. 애초에 유서 깊은 양반 집안으로서 일본으로 유학도 다녀오셨다.
독립운동가의 무료 변론을 하였고, 수익이 생기면 독립 자금으로 쓰려고 계획 하셨다. 해방 후에는 친일파 척결에 앞장섰고, 이승만, 박정희와 대척점에 서기도 하셨다.
김종인의 아버지 김재열 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그때가 한창 아버지를 따를 나이인 5살이었다. 그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보좌와 비서를 하면서 배웠다고 한다.
다른 친척들은 법조계로 나갔다. 그러나 그는 해외 유학을 가서 학력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당시 나이 32살로 파격적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부터 경제 관련하여 자문과 계획을 수립하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도 자문위원으로 참가를 하였다. 이 같은 행동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 후 거의 모든 정권에서 경제 자문이나 정치 자문을 비롯하여 활동을 했다.
그가 첫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1981년도였고, 총 5번이 당선되었는데 전부 비례대표였다. 비례대표 특화 정치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최근에도 비례대표 2번으로 선정했다가 내부 비판을 많이 받았다.
아마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비례대표로만 5번을 국회의원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기록될듯 하다. 이 기록은 향후 몇백년 안에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그는 35살 즈음에 결혼을 하였고 부인은 김미경 이라는 분이다. 그녀의 직업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 교수였다. 결혼스토리는 아는 사람이 중매를 해주었다고 한다. 말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거의 비선실세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어떠한 결정을 내리거나 판단할 때 아내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심지어 연설문도 직접 써주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부인 김미경 여사 님의 집안도 엄청나다. 일단 김종인의 장인이자 부인의 아버지는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이다. 처가는 금융계 집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형은 장관을 했었고 친인척들은 어느 은행의 은행장이었다. 4촌이나 8촌 정도로 가보면 각종 정권의 고위 공무원이나 법조계 출신들이 많다. 처 삼촌들은 조흥은행, 산업은행, 한국은행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은행을 거쳤다.
이 부부 사이에는 자녀가 딸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세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만약 결혼을 하여 사위가 있다면 이 또한 어마무시한 집안일 것으로 추정이 된다. 특이한 것은 사돈의 사돈으로 넘어가면 동아일보 혼맥도 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친가쪽은 거의 법조계 출신들이 많다. 고검장을 비롯하여 무슨 수석비서관 비서실장 복잡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뇌물 수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었다. 어느 기업체로 부터 2억 1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할아버님의 말씀중에 정의를 위해 굶는 것이 명예롭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일인지는 모르겠다.
또한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계백 장군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2017년 기사를 보니 Gold로만 3억여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골드바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직자 중에서 가장 많은 금을 소유한 1위로 선정되었다.
어느 평가에 대한 글을 보니 장점은 고집과 소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치 이력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너무 많은 곳을 다녔다. 그것은 아마도 의견 충돌이 있으면 굽히지 않고 그대로 이탈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그녀의 경제 스승이었다는 기사도 있고, 정권이 저물었을 때는 또 비판하기도 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이 분의 정체성은 나도 헛갈린다.
본인도 헛갈렸는지, 핑크로 가서 파랑을 응원하기도 했었다. 올해 나이가 팔순이 넘어갈라고 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 같으면 손자 손녀들 보면서 편하게 여생을 즐겼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직접 발로 뛰고 활동을 한다.
아무리 권력욕과 명예욕이 있다고 해도 80살에 뛰는 것은 쉬운일은 아니다. 그리고 여야를 막론하고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도 알기 어렵다. 이제 집안의 어르신이기 때문에 " 이렇게 하자 " 라고 한다면 여기저기서 같이 움직이는 팀들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진심 능력이 뛰어나서 일까. 단순히 비판만 하는 것 보다는 그 무언가가 있어보인다. 나는 가재 정도 되서 용의 세계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했던 업적중에 기억나는 것은 의료보험 체계를 정립 했던 것, 이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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