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아들 조희준 며느리 이혼 프로필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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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라 나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간 적이 있다. 강당에 모여 철야와 밤샘 예배를 드리던 현장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짐했다. 믿음으로 잠이 와도 버티면서, 성경책을 완독 하겠노라고...

그렇게 창세기전을 읽으며,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를 낭독했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오락실을 참아가며 버틴 쌈짓돈 전재산을 헌금으로 내고 나는 숙면을 취했다. 지금도 심신이 고단할 때 나는 성경책을 처음부터 읽는다. 마치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을 마스터하는 비장한 마음이다.

 

유년을 추억하며 조용기 목사 님의 프로필과 아들 조희준과 며느리의 결혼 이혼 재혼 내역과 가족관계를 살펴봤다. 창세기전과 집합만큼 성령이 나에게로 왔다.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조용기 목사 님 가족사진
왼쪽 아래 어린시절

 

1936년에 고향 경상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21년 기준 나이 86살이다. 형제자매는 5남 4녀였고 그중 장남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첫 시련이 왔다. 폐결핵으로 시한부 인생 진단을 받았고, 그때 처음 신앙을 접하여 치유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신학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학력은 당시 순복음 신학교 졸업이며, 그 후 한세대학교가 되었고 직접 인수까지 하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님 젊은시절 목회 사진
장모 최자실 목사 님 말씀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장모였던 최자실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22살 (1958년)에 개척교회로 천막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전도왕은 장모라고 얘기들 한다. 북을 치고 할렐루야 찬송을 하는 모습 때문에 유명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은 " 할렐루야 아줌마 "라고 했다 한다. 교회는 급성장하게 되었고 지금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성전을 건립하게 되었다.

 

조용기 목사 가계도
조용기 목사 가족 가계도

 

 

 

가계도를 살펴보면 가족들이 거의 종교 관련에 종사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국민일보를 창간하고 발행하고 있다. 부인 (아내) 故김성혜 여사 님은 한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처남도 목사로서 강남교회 담임목사로 역임했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의 집안, 그리고 첫째 아들 조희준과 둘째 아들 조민제 셋째 아들 조승제 등 국민일보와 교회 사회복지 재단에 소속되어 있다. 아들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그래서 군대 (병역) 면제를 받았다 하며, 현재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집사 김주하
결혼사진

 

대형교회이다 보니 세습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50주년에 은퇴를 하고 이영훈 담임목사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당시 잠실에서 이루어진 행사에서는 순복음교회에 다니는 김주하 아나운서 집사 님이 참석을 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당시 결혼식 주례를 조용기 목사 님이 직접 해서 뉴스에 나오기도 했었다.

 

이명박 장로 축사 사진
이명박 대통령 축사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감사와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했었으니, 당시 규모가 어마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조용기 목사 님은 김태촌과도 인연과 관계가 있었다.

 

김태촌 조용기 관계

 

범서방파 김태촌이 과거를 뉘우치고 기독교에 입문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강연도 했다. 학교폭력으로 구속된 학생들이었다. 강연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여기 있는 학생들의 일부는 조폭을 선망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목으로 30년 지내면서 남은 것은 감옥과 병이었어요. " 청소년들의 선도부장으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결혼 이혼 재혼 내역

 

첫째 아들 조희준의 결혼과 이혼 이력이 조금 복잡해서 표를 하나 가지고 왔다. 가족 관계인 손자와 손녀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1986년인 첫째 부인이자 며느리인 배우 나종미와 결혼하고 5년 후에 이혼을 했다. 이 사람은 당시 유명한 하이틴 스타 탤런트이자 연예인이었다. 1991년에 이혼하여 전부인이 되었다.

 

 

1992년에 재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은 일본 사람이었고 의사 집안이었다고 한다. 나카무라 유리코는 당시 나이 20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3년 후에 이혼을 했고 둘 사이에는 딸이 있다.

 

 

 

세 번째 부인은 2000년에 본인의 회사의 직원이었다. 재혼할 당시 나이 차이는 12살이었다. 이름은 장안나였고, 나이 23살이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네 번째는 아니고 내연관계였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차영 아나운서이자, 후에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상태였고 이미 전 남편과 딸이 두 명 있었다고 한다. 2000대 초반의 기사를 살펴보니 불륜이라는 말이 있던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둘 사이에서는 아들이 있었는데, 친자 확인 결과 친 손자가 맞다고 한다. 조용기 목사 님은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간은 농담조로 말이다.

 

" 머리숱과 아들은 얘기하지 마세요. "

 

그런데 나는 책을 읽을 때도 작가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 그는 누구이며 어느 시대에 살았고 어떤 심정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 마찬가지로 목회하는 목사님이 누군지 알려면 어떤 상황이고 왜 저런 말씀을 지금 이 시기에 하실까.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가 아닌 본인의 생각을 말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프로필과 가족들도 살펴보게 되었다.

 

왠지 내가 의도한 이유와는 다르게 이 글은 오래 걸리지 않아 사라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검열하는 분들은 너그럽고 관대하게 어느 모태신앙러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조용기 목사 님의 공과 업적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서 다 쓰지 못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발전과 확대와 전도와 세계 평화에 기여 했다는 평이 많이 있네요. 물론 반대 의견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일에 교인 등록하러 갈게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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