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프로필 부인 (아내) 자녀 가족

반응형

한덕수 국무총리 프로필을 살펴봤습니다. 조선시대로 따지면 재상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그리고 부인이자 아내인 최아영 서양화가 작가도 조금 알아봤네요. 와이프의 취미는 스킨스쿠버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또한 사주와 관상을 공부하기도 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응?) 가족관계에서 자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선출직 공무원은 인생에서 안 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도 생각해봤어요.

 

한덕수 미국 오바마와 악수 하는 모습
한덕수 오바마

 

* 생애와 프로필

 

1949년생으로 고향 전라도 전주 출신입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74살이 되네요. 집안은 아버지 한병호 님과 어머니 사이에서 형제 자매는 6남매 중에 다섯째입니다.

 

반응형

 

유년시절에는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보내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고 합니다. 학력은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일명 KS 엘리트 코스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덕수 악수
김영삼 한덕수

 

서울대학교 67학번으로 1970년인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에 행정고시를 패스합니다. 놀라운 것은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중에서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졸업생 중 상과대학 1등 수석, 전체 3등을 하여 대법원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습니다.

 

군대는 육군 병장 만기 전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력을 토대로 군 복무 기간을 추정하면 졸업 후에 24살~28살 사이에 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출신으로서 사병 만기 근무는 드문 사례입니다. 스스로도 이에 자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덕수의 악수 하는 모습
김대중 한덕수

 

1977년인 그의 나이 29살이 미국 하버드 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돼요. 그리고 31살에 석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34살에 또 하버드로 유학을 가게 되고, 이번에는 36살에 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이 같은 과정 중에서 와이프인 최아영 님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 국장이 되기를 원하는데 승진이 매우 느리다. "

 

드디어 박사 받고 귀국 후에 국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덕수 악수

 

박정희 시절부터 노태우 정권까지는 경제 관련 실무자로 나랏일을 했습니다. 그 후 김영삼 정권부터는 대통령 비서실로 파견되어 정부일을 하게 되었어요.

 

48살 이른 나이에 차관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고 IMF 위기 극복의 실무자로서 발로 뛰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했던 말을 생각하며 당시 상황이 조금이나마 상상이 됩니다.

 

" 언제나 문제에 대한 해답은 현장에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한덕수 걸어가면서 얘기하는 모습

 

사진에서 보면 아시다시피 정치 논리에 따라 기용되는 것이 아니라 역대 모든 정권에서 그를 중용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능력과 실무 전문성 그리고 실용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심지어 칠레 협상이나 한미 FTA 당시에도 다양한 의견과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당시 지휘를 하여 밀어붙인 경력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쌀 개방으로 농민들에게 볍씨 세례를 받기도 했었네요.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주미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었습니다.

 

박근혜 한덕수
문재인 대통령 한덕수 같이 걷는 모습
문재인 한덕수

 

특이하게도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권까지는 공직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국무역협회장의 직함으로 활동을 했고 청소년적십자 고문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했습니다.

 

큰 공백 기간 없이 꾸준하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활동을 한 이유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 철저한 자기 관리와 체력과 성실성 "

 

윤석열 한덕수가 손을 내미는 모습
윤석열 한덕수

 

참여정부 시절에 국무총리를 했던 당시의 일화가 인상적입니다. 참모들보다 먼저 기상하고, 조간신문까지 읽어본 후에 회의를 주관했다고 합니다.

 

배우자 최아영 작가 님의 직업은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력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 응용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나이 차이는 1살로서 누나입니다. 아들 딸 자녀가 없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네요.

 

한덕수 반기문 부부 같이 찍은 사진
한덕수 반기문 부부

 

결혼 스토리는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둘은 만났다고 하네요. 소개팅을 주선한 사람은 바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고 합니다. 66학번이니 같은 학과의 1년 선배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그 둘은 대학교 입학 전에 인연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인이자 아내의 남동생의 가정교사가 정운찬 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네요. 처가 집안도 상당한 재산과 명문가 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원래는 장인어른 소유의 현재 종로 집을 구매하여 거주지로 삼고 있습니다.

 

국가가 원한다면 봉사 하겠다고 얘기하는 한덕수

 

지금까지 가볍고 얕게 한덕수 란 분은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능력이나 전문성은 윗분들이 판단하실 거고, 제가 볼 때는 정치 진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원칙과 지식과 철학에 따라 공직과 실무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선출직보다는 임명직만을 하겠다는 고집이 보이네요. 아마도 선출직이 되고 그 감투를 유지하려면 유권자들의 바람이나 표를 의식하게 될 겁니다. 스스로의 이론과 철학에 반대되는 일도 해야 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체력, 성실, 그리고 노력 배우고 갑니다. 정치 진영을 떠나서 어느 분야의 정점에 계신 분에게는 뭐가 되든 배울 것이 있습니다.

 

다만, 무속 (무당)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 합니다.

 

한덕수 부인 최아영

 

그녀는 꿈을 꾸었습니다.

 

1. 헬기에서 조종사에게 부부가 권총을 맞았어요. 그 후에 남편이 국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2. 깜깜한 지하에서 해메다가 무거운 맨홀을 들고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후에 남편은 총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1번 꿈의 해몽을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영발도사에게 찾아가 물었다고 합니다.

 

미술과 무속의 궁합은 왠지 미래 영부인 김건희 님이 생각나네요. 소개라든가 추천이라든가 이런 관계가 아니길 바라며, 또한 국가 일 하는 데 있어서 능력 위주로 검증 받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큰 힘 보태주길 바라겠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